조선판 겨울전쟁을 선사한 7급 공무원

임진왜란 발발 8개월 후 가토 기요마사는 제2군 22,000명을 이끌고 함경도로 진군한다.

이는 고니시 유키나가보다 빠르게 명에 당도하여 공을 세우고자 하는 그의 사심이 반영된 진군이였다.

당시 함경도 관군은 여진기병을 상대로 숙련된 기병들을 보유하고있어, 함경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은 1차 해정창전투에서 승전하며 적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혀 가토군의 진군을 저지하나 싶었지만

2차 전투에서 패배하며 300명의 기병을 잃고 방어군 또한 와해되고만다.

관군의 패배소식을 들은 함경도는 내부서부터 무너졌다. 국세필, 국경인, 정말수 등 순왜를 자처한 인물들이 방어를 시도해보지도 않고 가토군을 받아들였으며 함경도 관직에 임하던 관원들과 임해군과 순화군을 인질로 넘긴다.

조선조정은 순식간에 함경도를 잃었고 가토는 순왜무리에게 벼슬을 내려 지역을 통제했다. 함경도는 순왜무리의 폭정과 왜군의 폭정에 시달려 지옥도로 변한다.

한편, 함경도 북평사(정6품) 정문부는 경성의 해변가에 은거하며 지내고있었는데 이는 관원임을 들킨다면 왜군에 끌려가 죽기 때문이였다.

지달원과 몇몇 경성의 유생들은 폭정에 못이겨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유생과 무사들을 모아 300명을 이뤘고 정문부에게 의병장을 제안한다. 정문부는 처음엔 난감해하며 거부했으나 곧 그들의 진심을 확인하며 27세의 나이로 의병장이 된다.

1.정문부의 거병

정문부는 강문우를 척후장으로 삼아 우선 경성의 국세필부터 처리하기로한다. 정문부는 북쪽의 여진을 함께 처리하자는 말로 국세필을 속여 성문을 열게한다.

경성에 입성한 뒤 국세필을 처리한 정문부는 적극적으로 순왜에 가담한 인물들만 처형한뒤 나머지 소극적 가담 순왜들은 죄를 면제해주며 경성의 민심을 얻는다. 또한 기병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길주에 위치한 가토 우마노조와의 연락망을 차단하며 100명 규모의 왜군들을 토벌한다.

경성을 확보한 정문부는 다음과 같은 격문을 6진에 뿌리며 순왜 처리를 호소한다. 정문부의 격문에 동요한 6진의 지역 유지들은 자객들을 준비해 밤에 회령순왜 국경인의 집에 불을 질러 포획한후 수급을 넘기며 의병에 합류한다.

국경인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 소식은 순왜 정말수가 위치한 명천에도 빠르게 퍼진다 심지어 정문부에 투항하라는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정말수는 진압에 화포까지 동원하는데 이는 곧명천의분노를 사게된다.

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 소식은 순왜 정말수가 위치한 명천에도 빠르게 퍼진다 심지어 정문부에 투항하라는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정말수는 진압에 화포까지 동원하는데 이는 곧

분노를 사게

정문부는 간단히 60명의 기병으로 명천을 공격했는데 분노한 명천의 백성들이 합류하여 정말수를 몰아내게된다. 도망치던 정말수는 정문부에게 합류하러가던 길주토병에게 붙잡혀 처형된다.

배신자들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소식은 함경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숨어지내던 무관들과 뜻이 있는자들은곧바로 경성으로 모이게된다. 흩어졌던 함경도 정예기마대도 정문부에게 합류하며 다시 군세를 이뤘다.

배신자들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소식

곧바로 경성으로 모이게된다. 흩어졌던 함경도 정예기마대도 정문부에게 합류하며 다시 군세를 이뤘다.

정문부를 따르는 이들을 세어보니 그 수가 5000명이었다. 이중 3500명을 선발해군을 3개 로 나누어길주로각각남하하며 본격적인 북관전투의 막이 오른다.

정문부를 따르는 이들을 세어보니 그 수가 5000명이었다. 이중 3500명을 선발해

길주로

남하하며 본격적인 북관전투의 막이 오른다.

2. 석성령-장덕산 전투

1592년 12월 3일길주의왜군 1,000명은 갯마을 가파리를 약탈하고 귀환하는 도중 석성령 고개서 원충서의 200명규모의병의기습을 받으며 전투가 시작된다.

1592년 12월 3일

왜군 1,000명은 갯마을 가파리를 약탈하고 귀환하는 도중 석성령 고개서 원충서의 200명

규모

기습을 받으며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초반 왜군은 기습엔 당황하며 후퇴했지만 이내 자신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걸 깨닫고 진영을 갖춰 맞서기 시작한다.

직후한인제의 기병 400명과 정문부 휘하 의병들이 합세해 포위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조선군으로 기운다

한인제의 기병 400명과 정문부 휘하 의병들이 합세해 포위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조선군으로 기운다

왜군은 수적우세를 이용하여 정예병들로 이루어진 돌격대를 통해 해쳐나가보려했지만 조선군의 기병에게 궤멸당하고 진영이 붕괴되어 장덕산으로 도주한다.

왜군은 장덕산을 통해 길주성으로퇴각하려하였으나 장덕산 정상은 이미 정문부가 선점해 기다리고있었다. 조총을 쏘며 정상을 오르려는 왜군들은 정문부의 기마대에 또다시쓸려나갔으며계곡으로 숨어들어간 왜군들은 함경도의 추위에동사한다.

은 장덕산을 통해 길주성으로

하려하였으나 장덕산 정상은 이미 정문부가 선점해 기다리고있었다. 조총을 쏘며 정상을 오르려는 왜군들은 정문부의 기마대에 또다시

으며

계곡으로 숨어들어간 왜군들은 함경도의 추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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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산에 불을질러가며왜군잔당을전부토벌하여장덕산전투는 마무리된다.정문부는 이 전투로 수급 600개와 많은양의 전투물자를 노획했다.

가며

전부

정문부는 이 전투로 수급 600개와 많은양의 전투물자를 노획했다.

3.길주공방전과 백탑교전투

장덕산에서의 패배 이후 겁을 집어먹은 가토 우마노조와 왜군은 성문을 잠그고 나오지않았다 정문부는 공성전을 행하기보단 포위를 택했다. 길주성을 포위하여 뗄감과 보급을 통제해많은 수의 왜군이 동사하거나 아사했다.

장덕산에서의 패배 이후 겁을 집어먹은 가토 우마노조와 왜군은 성문을 잠그고 나오지않았다 정문부는 공성전을 행하기보단 포위를 택했다. 길주성을 포위하여 뗄감과 보급을 통제해

당시 길주성에는 3000~4000명 규모의 왜군이 주둔하고있었지만 단 한번도 포위를 뚫어보려는 시도를 감히 하지못했다.

하루는 인내심이 바닥난 왜군 1개 부대(100명)가 보급을 위해 성문을 나섰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몰려온 정문부의 기병대가 그들을 처치하고 주검을 길주성 10리밖에 걸어두었다. 이를 본 왜군은 더욱 두려워해 나서지 못했다.

길주가 위험하다는 소식에 안변에 주둔하던 가토는 "재차 관북을 평정하겠다"라는장담을 하며 본군과 함께 북상하기 시작한다.

길주가 위험하다는 소식에 안변에 주둔하던 가토는 "재차 관북을 평정하겠다"라는

을 하며 본군과 함께 북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가토군의 선봉대는 단천에 이르렀는데 정문부는 왜군의 선봉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기병을 출격시킨다. 단천군수 강찬은 왜군과 교전중 일부러 패하는척 상대를유인했고

이후 가토군의 선봉대는 단천에 이르렀는데 정문부는 왜군의 선봉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기병을 출격시킨다. 단천군수 강찬은 왜군과 교전중 일부러 패하는척 상대를

왜군들이 백탑교에 이르자 장덕산전투와 같이 사방에서 둘러싸는 방식으로 가토의 선봉대를 궤멸시킨다.이때가토의 선봉대는 단 30명만이 살아남아 길주성으로 들어간다.

왜군들이 백탑교에 이르자 장덕산전투와 같이 사방에서 둘러싸는 방식으로 가토의 선봉대를 궤멸시킨다.

가토의 선봉대는 단 30명만이 살아남아 길주성으로 들어간다.

선봉대의 패전 소식을 들은 가토 기요마사는 더더욱 분노하며 본대를 모아 길주성으로 진군한다.

수적열세임을 확인한 정문부는 포위를 풀고 경성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기병을통한 유격전으로 소규모 교전을 이끌어내며 함경도의 혹독한 추위를 이용해손실을 유도해냈다.

수적열세임을 확인한 정문부는 포위를 풀고 경성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기병을통한 유격전으로 소규모 교전을 이끌어

내며 함경도의 혹독한 추위를 이용해

손실을 유도해냈다.

방한대책과추위에 익숙한 함경도 의병들과 달리 구마모토 출신의 가토의 왜군은 이 전쟁을 단기전으로 준비해 방한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므로 이 길주성에 머무르는것 조차 병력손실을 야기했다.

방한대책과

추위에 익숙한 함경도 의병들과 달리 구마모토 출신의 가토의 왜군은 이 전쟁을 단기전으로 준비해 방한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므로 이 길주성에 머무르는것 조차 병력손실을 야기했다.

더군다나 조선 수군에 박살나 재해권을 잃은 왜군은 보급이 말라가고 있었고 고니시 유키나가 또한 평양에서 후퇴해 전선을 물리고있었다.

만약 여기서 오기를 부려 정문부와 함경도에 묶여있는다면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결국 가토는 우마노조를 구한것으로 만족하고 급히 야밤에 성을 비우고 퇴각한다.이 과정에서 인질로 잡혔던 조선의 두 왕자도 구출해낸다.

만약 여기서 오기를 부려 정문부와 함경도에 묶여있는다면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결국 가토는 우마노조를 구한것으로 만족하고 급히 야밤에 성을 비우고 퇴각한다.

가토군의 퇴각소식을 들은 정문부는 즉시 추격대를 편성해 함흥까지 쫒아가 마지막까지 가토군을 괴롭힌다.

가토 기요마사는 2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함경도로 북상했는데 한양 퇴각이후 병사를 세어보니 8,500명이 사라졌다.

가토 기요마사는 2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함경도로 북상했는데 한양 퇴각이후 병사를 세어보니 8,500명

이후왜군들은 연이은 패전으로 한반도 남부지역까지후퇴하고 정문부는함경도 전체를 수복하며 5개월간의 북관전투는 정문부의 승리로 끝이난다.

이후

후퇴하

함경도 전체를 수복하며 5개월간의 북관전투는 정문부의 승리로 끝이난다.

함경도는 다시 조선 조정에 합류했으며 임진왜란 이후 정문부는 북평사(정6품)에서 영흥부사(정3품)직을 받고

광해군때는 더 큰공을 인정받아 길주 목사직을 받았으며

인조반정 이후 전주부윤의 자리까지 임명된다.

사후 숙종때는 이 전투를 기념하는 북관대첩비가 세워졌으며 조선 좌찬성에 추종되며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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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이야 씨벌 겨울에 적국 본토에서 전쟁했던 나폴레옹, 나치군, 6.25 중공군은 모조리 노짱 따라갔음.반면 한니발은 그 시대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로마 본진을 유린했으니… 수 많은 명장이 있지만 임팩트는 한니발이 king of king 이다
ㅇㅇ •
역사 날로 오지네 ㅎㅎㅎ함경도로 간 조선 왕자가 정신 못 차리고 현지에 가서 수탈, 깽판치니까 현지 주민들이 묶어서 가토한테 갖다 바침. 정작 조선 백성을 못 살게 괴롭힌건 조선 왕자들임.그리고 마지막 저 칼 딱 보면 일본칼 아니란게 보이는데, 뭔 가토가 버리고 간 칼 ㅋㅋㅋ인터넷에서 일본 전국시대때 칼 찾아봐라...저따구 모양이 있나......날조 좀 하지마라
ㅇㄴ •
북평사가 지금으로 치면 무슨 직이길래 병사를 다룰 줄 아는거임?? 군무원인가?
ㅇㅇ •
들어가서 찬성부탁드려요 소문자 애이취 소문자 티 소문자 티 소문자 피 소문자 애스://소문자 피 소문자 이 소문자 티 소문자 아이 소문자 티 소문자 아이 소문자 오 소문자 앤 소문자 애스. 소문자 애이 소문자 애스 소문자 애스 소문자 이 소문자 앰 소문자 비 소문자 앨 소문자 와이.소문자 쥐 소문자 오.소문자 캐이 소문자 알/ 소문자 피 소문자 알 소문자 오 소문자 씨 소문자 이 소문자 이 소문자 디/소문자 알 소문자 이 소문자 쥐 소문자 아이 소문자 애스 소문자 티 소문자 이 소문자 알 소문자 이 소문자 디/3대문자 애프475대문자 비0대문자 애이3대문자 디7대문자 애이0042대문자 이064대문자 비49691대문자 씨6967대문자 비영어주소가 안 올라가서 무슨 암호처럼 간
징병 •
니가 말해봤자저짤만드는팀은 이미 모든커뮤니티에 다뿌려서 선동완료됨
ㅇㅇ •
팩트) 실록에 남아있는게 아니라 늘 그렇듯 개센징 장군들의 자체 망상소설인 행장록 기반이다 ㅇㅇ 개병대 구라질이랑 똑같음
ㅇㅇ •
함경 일대 항왜세력 규합 >> 조선인 반란 수뇌부 일소 >> 수차례 유격전에서 일본군각개격파 >> 기병대 중심의 지속적 교란과 보급 차단 ---> 가토 제2군 약체화 및 함경도 철수에 일조, 전략목표 달성. 적어도 20대에 이 흐름을 주도한 정문부는 명장이 맞다
앙부 •
여기 있는 일뽕들 대부분 개쌍도 출신들인데, 솔직히 국뽕세뇌는 그렇게 심각한 촌구석에서 최저임금 후려치고 착취당하면 나라도 일뽕으로 흑화하며 현실도피하고 싶긴 할듯 ㅋㅋㅋ 개쌍도 촌구석에서 안태어나서 다행이노 ㅋ
ㅇㅇ •
근데 카가얀 전투나 흥양해전 보면 솔직히 임진왜란 시점때도 이미 동아시아랑 서구권이랑 격차 유의미하게 벌어진 시기여서 무게감이 떨어짐
ㅇㅇ •
북쪽 관군등이 전투민족 여진족 상대라 그나마 전투력이 나오는 곳인데 병자호란전에 조선왕실의 생사람 잡는 ㅄ짓으로 북방군 삭다 모조리 날려버려서 청군한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털린 거 잖아
ㅇㅇ •
일본 애들은 걍 기병 상대로 뭘 못하는 게 문제임
ㅇㅇ •
금나라는 신라의 후신임 청사 금사 고려사 송사에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임 중국 발작버튼 금나라
ㅇㅇ •
일뽕 원종단 말 따라 왜인들이 잘 싸우긴 해도 역시 그들도 인간인지라 자연 환경과 말이라는 동물을 이길 수는 없구나 왜인 병사들이 기병 잡은 것도 탄금대 전투 이후 뿐이었나 봄 북방 지역 들어가니깐 교환비가 동급으로 되버리네 ㅋㅋㅋㅋㅋㅋ씨빠 ㅋㅋㅋㅋㅋ 괜히 중세 유럽에서 왜 기사 기사 그러는 줄 이제 알겠음 사무라이드 소드건 나발이건 저 멀리서 진격거 마냥
ㅇㅇ •
가토는 뭐하려고 함경도 까지 기어들어간거냐? 명나라 치려면 의주로 가야 되는거 아님?
45 •
일본이 친 여진 애들이 누르하치쪽이면 일본이 패배한게 또 맞는 말이긴 함 괜히 만주족 청나라가 티베트네 위구르네 준가르네 타지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동부 아프가니스탄 동부 등등 그 중국의 수 많은 영토와 민족들을 지배한게 아니거든 청나라 애들 전성기때 몽골이랑 교환비가 3대 1이었고 청나라가 네팔 칠때 유일하게 구르카랑 비등하게 싸운게 만주 지역 팔기군
ㅇㅇ •
애들임 아무리 일본이 잘 싸워도 탄금대가 아닌 북부 평야에서 조센군이든 만주군이든 중국군이든 유럽군이든 기병 자체를 이기기는 어려울 듯 애초에 임진왜란 보면 미얀마네 태국이네 포르투칼이네 네덜란드네 카자흐네 키르기스네 중앙아시아 튀르크계네 등등 전세계 수 많은 용병들이 집한한 국제전이었는데 카가얀에서도 쳐 발린 일본 사무라이가 세계정복 한다는 소리도 아니고
ㅇㅇ •
+ 누르하치는 잘 안알려졌지만 인삼무역으로 당시 자금력을 축척하고 있었음
ㅇㅇ •
거울전쟁 은의여인 미만잡. 나름 재밌게했었는데 유즈맵 만드는것도 쉽고해서
ㅇㅇ •
소서행장은 이순신이랑 많이 묶여서 잘 아는데 가등청정은 뭐하고있었나 했더니 동쪽루트 탔다가 임자 만난거였구나 ㅋㅋㅋㅋ
ㅇㅇ •
기병이 조총앞에 약한게 문제였으면 왜 1대전까지 기병을 썼겠냐. 기병에는 기병의 용도가 있으니까 쓴거지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