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로모라는 한국의 분필 회사가 있다.

2022년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를 비롯해 전세계 수학자들과 교사들의 사랑을 받는 분필로

부드러운 필기감, 튼튼한 내구도, 선명성으로 극찬을 받는 분필계의 레전드 회사다.

하고로모는 일본 전설 속 천녀들이 입는다는 날개옷(깃옷) '羽衣'를 일본어로 읽은 것이다.
한국회사가 어쩌다 일본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사실 하고로모는 일본회사였다! (하고로모 본사 2014년 사진)
1932년, 와타나베 시로 씨가 '일본초크제조소'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분필회사로
1947년, '하고로모문구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분필계 1위인 '후지분필'이 '후지산'에서 따온 이름이라,
후지초크를 뛰어넘겠다는 뜻을 담아 후지산보다 높은 단어를 붙였다고 한다.

2015년 3대째인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까지 내려왔는데,
타카야스 사장이 위암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후계자를 찾게 된다.

헌데 타카야스 사장은 딸만 셋이라 물려줄 아들이 없었다.

세 사위 중 한명한테라도 물려주려고 했는데,
사위들이 다 사회적으로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못나가는' 막내사위가 대학교수일 정도니...
사회적 지위를 포기시키고 사양길인 분필제조사업을 물려주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막내사위한테 공장을 맡겨봤더니

2개월만에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포기했다.

하고로모를 인수하겠다는 일본회사들도 많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칠판제조업체 등...
그러나 타카야스 사장이 보기에 그들은 분필제조법을 알아내는데만 관심 있었지,
하고로모가 고집한 브랜드, 품질, 가치 등을 이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브랜드와 품질을 떨어뜨리느니 폐업을 결정했다.
소식을 접한 전세계 교수들이 급히 하고로모 분필을 사재기했다.

그리고 소식을 접한 학원강사이자 하고로모 한국수입사 '세종몰' 대표인 신형석 대표도 분필을 사재기....
하는게 아니라 아예 하고로모를 인수하겠다고 나선다...


그는 2003년 일본에 가서 우연히 하고로모를 접한뒤 반해버렸는데,
한국에 수입사가 없자 2009년 자기가 직접 세종몰을 차려 수입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고로모 러버다.
폐업을 한다고 하자 이번엔 하고로모를 인수해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것.

신대표와 절친한 타카야스 사장이지만, 처음엔 반대했다.
학원강사인 신대표가 어려운 제조업을 어떻게 하느냐 등...
그러나 하고로모의 브랜드와 품질을 잇겠다며 간절히 설득하자 결국 수락하고 만다.
이때 신대표는 '세상이 바뀌면서 어쩔수 없이 사라지는 제품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제품이 가장 마지막에 사라져야 한다.'는
울림있는 말을 했다고...

타카야스 사장이 매년 몇번 한국을 방문하는 친한파인데다,
둘째딸이 고려대에서 교환학생을 한 과거도 영향이 있었다는 후문.
신대표는 일본 나고야공장의 모든 기계를 통째로 뜯어 들여오고,
일본에서 쓴 원재료까지 그대로 수입하는 정성을 보였다.
타카야스 사장도 5천만원짜리 기계를 100만원으로 깎아주는 등 열심히 도왔다.

여기에 일본 공장에서 일하던 베테랑 재일교포 근로자를 스카웃하기까지 하며 품질에 신경쓴 덕분에,
일본생산 시절 품질을 완벽히 재현했다!

타카야스 사장은 한국 포천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을 정도.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아
하고로모 분필은 분필과 칠판산업이 쇠락해도 전세계로 뻗어나가 매출을 꾸준히 증대, 2024년엔 30억 매출을 올렸다!

이상이 일본 80년 전통 분필회사가 한국회사가 된 이야기다.

타카야스 사장은 2020년 타계했지만,
하고로모분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국경을 뛰어넘은 인연과 진심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