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가 당한 굴욕적인 사건.

<조선 통신사>

우수한 uri한민족이 미개한 일본에 문화와 기술을 전수 해줬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한국사 = 해외에선 사실상 3류 판타지 소설취급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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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성리학 때문에 망한 나라지 현재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전성기고 우리는 광복 이후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할지언정 조선 시대 조상에 한해서는 전혀 자랑스러워할 게 없음
ㅇㅇ •
태국도 1600년대에 프랑스 국왕이랑 교황한테 국제 사신단 보내고 베트남도 프랑스랑 교역했음일본 중국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상인들이 드글드글했다동아시아에서 서양과의 교류가 '단하나도' 없던 나라가 유일하게 딱하나 있는데 그게 조선임
ㅇㅇ •
너무 자학하지 마라한반도 사람들 역시도 주어진 환경에서 꽤 발버둥 치며 살아온 거다과거를 비웃긴 쉽다. 하지만 자기자신은 어떠냐? 너라면 지금 무엇을 바꿀 수 있냐?과거를 함부로 비웃는 사람들은 과거에 태어났어도 똑같이 과거를 비웃다가 생을 마쳤을 거다나쁜 점을 보고 비웃기 보다 좋은 점을 보고 동기를 얻어라
ㅇㅇ •
이 내가 지금 태어나 쉼대남이 됐다는게 한국역사의 비극이지... 저떄 태어나서 조선을 이끌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것
ㅇㅇ •
피휘라는 저 문화가 진짜 징글징글한 게 청나라는 강희자전에도 피휘를 했더만 아니 한자 참고하기 위해 만드는 자전까지 피휘를 해 버리면..
ㅇㅇ •
솔직히 섬나라빨인 일본한테 열등감 느낄만한건서양문물 좀더 빨리 수용하지 못한것 밖에없음
ㅇㅇ •
참고로 저 시절 하층민들은 수준이 처참해서 하층민으로 태어나면 그냥 운지행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 •
당시 기준 섬나라가 왕조 국가들에 지속적으로 그 정도 영향력을 미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함즉 고대서부터 압도적인 문화 기술 차이가 났다는 게 분명일본은 태평양에 막혀 있어 짱센과 교류해야 했는데도 그 꼬라지인 거임
ㅇㅇ •
그러나 문과적인 제도는 여러 원인으로 인도보단 근현대의 민중적 제도와 유사한 부분도 있다. 남방까지 통일된 전근대 중화제국들은 언제나 대략적으로 백만대군에 1,000개의 행정구역을 가졌는데 행정구역들을 전부 방어할 병력이 부족하여 언제나 도적이나 해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중화문명은 통전을 참고하면 무장 수준을 로마와 비슷하게 할 경우 50만 병력이 한계였으며 앵거슨 매디슨과 케임브리지 세계사 등에선 로마 문명보다 약소하게 나온다. 중화 문명의 경우 유교나 민중적 특성으로 인하여 서경순의 기록처럼 인민들이 마구 설치는 상황이 청나라까지 이어졌다.[3]
ㅇㅇ •
아예 광개토대왕릉비부터 광개토대왕이 일본한테 개처맞고 속국 된 신라 백제 괴롭히는 내가 때려줬다가 주 내용인데 일본이 속국이었다는 역발상까지함 ㅋㅋㅋㅋㅋ
ㅇㅇ •
세계와의 연결을 끊고 "자주" "자력" "자립" 이런거에 매몰 된게 저 시절 조선이고 그 후신이 지금 북한임. 한국인들이 해양세력과 연계를 끊어내면 조선인들 내면에 있는 그 악랄하고 미천한 본성을 억누를 수단이 사라져서 북한처럼 되는거
ㅇㅇ •
한국-> 주변 인구많은 강대국들한테 수도없이 침략당해국토가 피폐해지자 인구도 줄고 점점 지쳐 속국의 길을 선택함일본 -> 섬나라라 아무도 침략안해 여유롭게 서양문물 받아들이고 발전해 뒤통수 때리는 야비한애들
ㅇㅇ •
세계적인 인물이 없고 영토전쟁을 해본적이 없음근대 파트로 넘어오면 내용이 애국 해방 극복 이 세가지로 주먹구구임눈치빠른 사람들은 한국사 공부하면 뭔가 쎄하다는걸 느낌
ㅇㅇ •
여진족은 뭉치면 ㅈ되는민족인데 명나라 조선이임진왜란이랑 사르후전투에서 못막아서 청나라가 건국된거
ㅇㅇ •
애초에 일본은 도덕팔이하던 놈도 인간의 본성이나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런 놈들 많았으니까
ㅇㅇ •
일본은 유신지사들을 중심으로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으로 근대화가 짧은시간 성공리에 진행 아시아 국가들중 유일무이
ㅇㅇ •
일본, 400년전에 유럽에 사절단 보내다 하세쿠라 쓰네나가, 멕시코 거쳐 스페인, 프랑스, 로마 방문…귀국전 쇄국령으로 무산게이쵸 견구사절단(慶長遣歐使節團)이라 명명된 이 사절단은 태평양을 횡단해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뉴스페인(멕시코)를 거쳐 유럽의 스페인, 프랑스, 로마를 거쳐 6년만에 귀국했다. 일본이 서양에 보낸 최초의 외교사절단이었다
ㅇㅇ •
하세쿠라 쓰네나가를 단장으로 한 사절단이었다. 사절단이 탄 다테마루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복이었던 센다이(仙臺) 번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비용으로 센다이 번에서 건조되었기 때문에 선명이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지만 건조 기술자는 막부에서 파견되었고, 막부의 지시로 5개월만에 건조되었다. 이 배는 후에 유럽식으로 산후안 바우티스타(San J
ㅇㅇ •
전통적으로 무인이 추대받고 주류를 이룬 일본이 이후 유신지사들을 중심으로한 근대화 과정은 흥미롭고 전쟁을 통한 인류 문명의 발전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ㅇㅇ •
일본은 에도 막부 시절인 1641년에 나가사키 앞바다에 인공섬 '데지마'를 건설해서 이곳에서 네덜란드와 제한적인 무역을 했음. 네덜란드인들이 다른 일본 항구에는 접안을 못하고 오직 이곳에서만 무역을 했는데 그 덕분에 네덜란드 상선을 통해 당대 유럽의 서적과 물건이 어느 정도는 유입됨. 이렇게 서양을 통해 들어오는 문물과 사상을 난학이라고 불렀지. 일본의 개항을 그 1800년대의 흑선사태와 메이지유신만 생각하는데, 이미 1641년부터 독자적으로 서양과 접촉 하고 있었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동인도제도에 걸쳐서 거기 토착 세력들을 무너뜨리고 식민지와 무역망을 건설하는것도 진작에 알고 있었음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