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크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던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당시 겨우 12세였던 에드워드 5세가 왕이 되자
워드빌 가문의 권력 독점을 막고 조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왕의 최측근이었던 헤이스팅스 경 등을 반역죄로 몰아 즉결 처형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

훗날 리처드 3세(Richard III, 1482-1485)가 되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결국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1483년 왕위를 찬탈한다.

조카들을 안전상의 이유라며 런던 탑에 유폐했는데 얼마 후 아이들은 "우연히" 대중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져 쥐도새도 없이 사라졌다.
(훗날 아이 두명의 유골이 탑 밑에서 발견되었다.)

악랄하게 왕위를 찬탈한 리처드 3세는 평민들에게 몹쓸 정책을 벌였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국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요청법원(Court of Requests)을 세웠으며
유죄 확정 전까지 피고인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무작정 투옥되는 것을 방지하는 보석금 제도를 통과시키고
영국 법령을 영어로 작성하여 평민들도 법을 읽고 자신의 권리를 알 수 있게 했으며
헌금을 핑계로 강제로 세금을 뜯어가는 제도를 폐지시키고
지방 관리들이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함부로 압류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부정부패를 척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