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속 대마도주의 눈물의 구라쇼

대마도는 실은 일본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거 아냐?

아무튼 가깝고도 먼 이 섬은 한반도와 여러가지로 얽힐게 많았음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대마도는 단순한 섬이 아닌 조선과 일본을 잇는 접점이자 동시에 해적인 왜구의 거점이었거든

그중 조선과 대마도 사이, 게다가 임진왜란에 대한 특이한 사건이 있어 말해보려함

일단 조선과 대마도는 어떤 사이였냐 란걸 알아야함

대마도는 세종대왕 시절 그냥 "해적소굴"이었음

참다못한 조선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이랑 배 200척을 보내 대마도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폭격한것마냥 개박살을 내버려

너무 깊게 진격하던 조선군이 매복을 만나 손실을 입고 태풍소식을 듣고 철군하긴 했지만

대마도 왜구의 배 129척과 집 2천채를 전부 아작을 내서 허허벌판으로 만들어버린거지

며칠만에 동양의 가자지구가 된 대마도의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는 조선에 제발 살려달라고 빌며 대마도를 조선의 한 고을로 받아 달라고 항복함

이때부터 대마도는 조선의 왕에게 관직과 도장(인신)을 받고 매년 쌀과 콩을 얻어먹는 경제속국이 되었음

일종의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흉내낸 것이라 볼 수 있지

조선은 이로인해 큰 이득을 얻었는데 바로 "왜구의 근절"임

대마도를 복속시킴으로서 조선은 대마도주의 충성을 얻고 이후 100년간 해적질을 단속시킴으로서 목표를 달성했던거지

대마도도 큰 이득을 얻었는데

대마도는 땅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암반이 많아 농사짓기가 힘들었는데

조선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앞서말한 매년 쌀과 콩을 받을 수 있었고

조선의 왕이 하사한 도장(인신)을 사용하여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는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음

게다가 대마도는 정기적으로 무역의 허가를 요청하기위해 세사라는 사신을 조선에 파견하여 주기적으로 허락을 받았는데

조선은 세사가 올때마다 쌀과 비단등의 선물을 챙겨줘 대마도가 다른맘을 못먹게 구슬리기도 했어

그렇게 조선은 왜구 막아 좋고 대마도는 식량받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는 무역을 독점해 돈을 벌어 좋은 윈윈관계는 어떤놈이 등장하고 깨지게됨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한거임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나 명나라 칠테니까 조선왕은 내 밑으로 들어와라" 라는 소릴함

양국 사이에서 기가막히게 쌀먹을 하던 대마도는 미쳐버릴 노릇인거지

아니 공짜 쌀이 없어진다고

일본의 조선무역 독점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던 대마도였는데 그게

연일 하한가 상장폐지 좆된상황인거임

이때 대마도주였던 소 요시토시와 그의 장인(소 요시토시는 고니시의 딸인 마리아와 결혼함) 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을 막을 기가막힌 작전을 기획함

"까짓거 구라 함 치자"

당시 일본과 조선의 대화는 대마도주가 담당했는데

담당자였던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히데요시의 "조선은 항복하라"는 서신을 "우리 통일했으니 통신사좀 보내주세요"로 바꿔 선조(조선왕)에게 전했고

히데요시에게는 "조선왕이 곧 항복하러 올거임" 이라는 거짓 서신을 보냄

조선에선 조공 개꿀 하며 통신사를 보냈고 잔뜩 들뜬 히데요시가 그들을 맞았지

그런데 조선에서 보낸 국서엔 항복의 ㅎ자도 없이 훈계만 가득했고

이에 빡친 히데요시는 바로 침공을 명령함

그렇게 임진왜란이 터져버림

전쟁 멈추려고 꼼수부린게 오히려 불을 질러버린 꼴이 된거임

그렇게 전쟁이 터지고 조선에 영웅 이순신의 등장 및 의병봉기 등으로 전쟁은 기나긴 교착상태에 빠지게됨

빨리 전쟁 끝내고 집에가서 대마도 무역으로 쌀먹이나 하고싶었던 고니시는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지

그때 그의 머리에 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름

"마 함 더 하자"

고니시는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짜고 다시한번 구라를 침

명나라 황제에겐 "히데요시가 잘못을 빌며 항복함"이란 가짜 국서를 보내고

히데요시에겐 "명나라 황제가 널 일본국왕으로 인정하고 항복함"이란 가짜 국서를 만들어 보낸거임

양국 정상을 낚은 이 사기극은 무려 3년이나 이어짐

당시 이 사기극을 이끈 고니시와 심유경은 "이대로 시마이치고 돌아가입시다"라는 무드를 잡게됨

하지만 나중에 히데요시가 명나라 사신을 직접 대면했다가 진실을 알게되고

명나라 사신이 읽어준 "넌 내 신하 ㅋ"를 듣고 개빡쳐서 또다시 침략하게되지

이게 바로 정유재란임

그리고 이래저래 히데요시가 죽어버리고 임진왜란이 끝나게 됨

전쟁후 고니시는 세키가하라전투에서 패배하여 가문이 완전히 망해버렸고 고니시는 사형당함

그걸 본 소 요시토시는 아내였던 마리아(고니시의 딸)를 내쫒아 버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은 교토로 보내 막부에 의해 살해당하게 만듦

하지만 전쟁이 끝났어도 개빡친 조선이 더이상 무역을 허락할지는 미지수였지

물론 직접적 피해자인 선조는 야마가 돌아서 절대 허락 안해줬고

다음으로 광해군이 즉위하고 조선은 일본에게 "사죄해라!" 라는 서신을 보냄

조선과 일본의 사이에 있던 대마도주는 또 기가막힌 생각을 하게되지

"남자는 삼세판"

대마도주는 에도 막부의 도장을 위조해 "미안합니다!"라는 가짜국서를 조선에 보내고

조선이 요구한 왕릉 도굴범을 대충 감옥에 있던 잡범을 데려다가 "얘들이 왕릉 도굴한놈들입니다!" 라며 가짜 도굴범을 만들어 조선에 보냄

조선도 "어? 도굴범들이 너무 어린데? 이새끼들 구라치노"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씹창난 전국토 복구랑 나라 정상화를 위해 그냥 눈감아주고 대마도를 통한 일본 교역을 재개함(기유약조)

이후 수백년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쌀먹을 하던 대마도는

19세기 일본에 메이지유신이 터지면서 나가사키현으로 편입되고

모든 특권을 포기하게됨

이때 일본이 대마도의 자치권과 외교권을 빼앗으며 든 이유는 "조선에게 관직을 받고 쌀을 받는게 쪽팔린다"였다고함

요약

1.대마도는 일본의 조선 교역을 독점함

2.임진왜란전 조선이 항복했다고 구라치다 걸려서 임진왜란 일어남

3.임진왜란중 명나라가 항복했다고 구라치다 걸려서 정유재란 일어남

4.임진왜란후 에도 막부 도장 위조해서 일본이 사과한다 구라쳐서 기유약조 맺음

5.메이지유신 터지고 일본이 조선한테 굽신거리는거 쪽팔린다고 대마도 외교권 박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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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솔직히 왜구보다는 사기꾼이 낫긴 하네. 적어도 전쟁은 싫어하는 놈들이니까
ㅇㅇ •
대마도 침공팩트) 이미철수한 왜인들 집 털다가 선봉 500명 해변넘어서 산길 들어서자마자 매복에 싹다전멸당함 그리고 무서워서 철수
ㅇㅇ •
솔직히 대마도 왜구 해적떼들 본거지 맞지 거기가 아니면 어디였겠음
ㅇㅇ •
"조선은 세종대왕 시절 그냥 "해적소굴"이었음"조선이 해적이었다니 놀랍네요
ㅇㅇ •
조선이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에, 일본이 얼마나 큰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대마도에 집착했던 것뿐이다. 그냥 하룻강아지들이었지, 조선군은
ㅇㅇ •
거짓과 사실을 뒤섞었네.조선은 대마도 정벌을 실패했기 때문에, 왜구들에게 교역을 허용해주고 왜관을 설치하게 한 것임.해적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그냥 교역하다가 상대가 안 하려고 하면 무력으로 강압해서 교역하거나 약탈하는 것임.조선은 왜구가 원하는 걸 그냥 다 들어줬다고 보면 됨
ㅇㅇ •
그리고 대마도는 조선에 복속된 적이 단 한번도 없음.고대부터 현대까지 쭉 일본의 영역이었고, 언어와 문화 역시 일본인이었음.대마도가 조선왕조의 신하였다면, 소오 요시토시가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침략할 수가 없는 거지 ㅋㅋㅋㅋㅋㅋ그냥 조선은 왜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마도에 교역을 허락해준 것일 뿐임
ㅇㅇ •
《세종실록》 1년(1419년) 6월 26일"이종무가 후퇴하여 배에 올랐다. 처음에 이종무가 군사를 나누어 땅에 내려가게 하였는데, 적(왜군)이 험한 곳에 의거하여 복병을 베풀어 우리 군사를 기다렸다. >우리 군사가 보지 못하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적이 갑자기 나와서 치니, 우리 군사가 패하여 죽은 자가 1백여 명에 달하였다. 편장(고위 장교) 박홍신, 박무양, 김해, 김희 등이 모두 싸우다 죽었다."—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 6월 26일
ㅇㅇ •
"이종무가 적의 형세를 살피지 못하고 경솔하게 진군하였다가 패배를 초래하였다. 장수들은 서로 구원하지 않았으며, 군사들은 겁을 먹고 먼저 배로 도망쳤다. 이종무는 이를 통제하지 못했으니 죄를 물어야 한다." 세종1년 9월 20일
ㅇㅇ •
《세종실록》 1년(1419년) 7월 22일 기록상왕(태종)이 말하였다:"이번에 대마도에 간 군사들이 적에게 패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으니, 만약 이 소문이 중국(명나라)에 새어 나간다면 실로 나라의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대신들이 대답하였다:"이미 소문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마침 명나라 사신이 올 예정이니, 우리가 먼저 가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여 저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ㅇㅇ •
대마도가 아직까지도 일본 본토에서 이미지가 안좋은게 배신을 밥먹듯이해서임 오죽하면 오키나와 보다 차별이 심함
ㅇㅇ •
조선통신사도 청나라에 털린 조선이 일본에 조공바친건데 이걸 문화외교로 포장하는것 자체가 정신승리
문돗 •
조선통신사 최종 루트가 닛코의 도쇼구(에도막부 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묘소)에 가서 참배하는거라 빼박 조공단 확정인데 이건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죽어도 안가르침 ㅋㅋㅋ
문돗 •
돈주고 우리 때리지 말아주세요 하는걸 쉽게 말하면 친구비, 보호비라고 한다
ㅇㅇ •
음...왜구를 복속시키질 못하니 쟤들 요구를 들어줬다는 해석이 정확할텐데ㅋㅋ언제부터 조선 형편이 그리 넉넉했노ㅋㅋ
ㅇㅇ •
조선이 머저리인 게 싹 밀어버리고 인종청소하고 이주민 보내고 직접 관청을 설치했어야 했다
ㅇㅇ •
조선은 실패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드궤줴~
ㅇㅇ •
대마도는 일본인들이 살아서 그렇지 중간지대였고 일본정부에게 지원받는것도 없었고 그래서 조선에 붙어서 연명하던곳인데 히데요시가 전쟁한다고 제일 발등에 불떨어진게 대마도였어 전쟁기지가 된거라 빨리 전쟁 끝내려고 난리였음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