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4~6월 오키나와 전투는 미국과 일본제국이 최대규모로 격돌했던 전투였다.
바다에선 가미카제와 미해군 기동부대의 싸움이었고
육지에선 일본제국 육군과 미해병대,육군 전차간의 싸움이었다.


오키나와의 미군이 보유한 전차의 숫자는
셔먼전차 493대 화염방사전차 73대 및 105mm 셔먼돌격포 42대로 합계 608대였다.
거기에 더해 보충용 전차도 200대 이상을 투입하여
실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된 모든 종류의 전차의 합계는 800대가 넘었다.
이는 기갑사단 4개를 만들고도 남는 숫자다.
반면
제대로된 전차,대전차 무기도 갖춰지지 못했던 일본군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대전차 전술을 만들어 미군을 정말 끈질기게 괴롭혔다.


1식 기동 47mm 속사포
당시 1.53kg짜리 철갑고폭탄은 셔먼전차의 정면 철갑을 뚫을 수 없었기에
방어가 취약한 측면을 노리는 전술을 만들었다.
"기동성을 이용한매복과 기습"
"
기동성을 이용한
매복과 기습"



99식 대전차 지뢰를 매설 한뒤
가까이 다가오면 측면을 노려서 사격했고 정면을 쏘더라도 차체와 포탑이 연결된 부위를 조준하도록 엄격한 명령이 내려졌다.
대전차포가 발포될 때는 반드시 주변의 기관총,소총,박격포들도 동시에 사격을 가해 전차옆 동행하는 보병을 공격하도록 되어있었다.

75mm 105mm 150mm 야포도 주요 역할을 했다.
1식 47mm와 거의 비슷한 숫자의 셔먼전차를 파괴.

대전차지뢰 ㅡ 대전차포 ㅡ 야포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전차는
대전차공격조가 막았는데 즉 지상의 가미카제였다.


첫 두달간 셔먼탱크의 손실은 388대 중 221대가 공격당해
손실률 57%였고
전투 종료후 800대 중 153대가 완전손실을 기록했다.


(셔먼 전차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카카즈 능선)
일본군은 항복하거나 자발적으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싸웠기에 앞으로 더욱 치열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의 저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강력한 포병 전력이었다.
미군은 이전에는 그처럼 많은 양의 포병(박격포 포함)과,특히 보병 공격을지원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능력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미군은 이전에는 그처럼 많은 양의 포병(박격포 포함)과,
특히 보병 공격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능력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오키나와에서의 끔직한 피해는
트루먼에게 큰 충격을 줬다. 7월 예정이었던 규슈상륙을 취소 하고 결국 원자폭탄을 사용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