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붕이들도 이 새끼가 아들한테 한 만행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동시대 독일(프로이센)에도 영조급으로 아들을 두들겨패던 인물이 있었다

오늘은 독일산 영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군주로서 이 새끼의 평가는 꽤나 좋다

상비군 제도와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통해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고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육성해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 중 하나로 만드는 기틀을 잡은 유능한 군주였다

또한 사치를 존나게 싫어해 관료들의 화려한 복장을 싹 뜯어고치고 선왕이 지은 궁전과 정원도 전부 팔아버렸다

여기까지 보면 존나 유능한 상남자 군주처럼 보이겠지만
문제는 이 상남자스러움이 가족관계에도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1707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당연히 첫 아들이니만큼 애지중지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이 새끼는 아니었다

"후계자라면 왕관이 잘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

아들의 첫 세례식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왕관을 무조건 씌워줘야 한다면서 6개월 된 응애의 머리에 왕관을 우겨넣는 사고를 친다

굳지도 않은 6개월 응애 머리에 그런 짓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기는 머리에 난 생채기가 감염되어 병들어 죽고 만다

그리고 1710년, 3년만에 아들을 새로 뽑자마자 이 새끼는 또 다른 기행을 저지른다

"후계자라면 어릴 때부터 대포 소리에 익숙해져야겠지?"

바로 1살 난 응애를 데리고 군대 사열식에서 대포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다
당연히 장교들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존나 말렸지만

"좆까 ㅋㅋ"
왕이 하겠다는데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나.

당연하게도 아기는 바로 옆에서 대포 소리를 듣고 쇼크사로 생을 마감한다

1년 뒤 새로 아들 가챠를 시전해 3남을 얻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과연 이번에는 아들을 애지중지 했을까?

6살 때부터 대포로 알람소리를 대신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에게 두들겨맞았다는 사소한 찐빠가 있긴 했지만
3남 프리드리히는 장성해서 예술을 사랑하는 스윗독남이 되었다

그러나 이 새끼에게 아들이 예술 같은 씹게이스러운 취미를 좋아한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한번은 왕세자가 플루트 연주회에 갔다가 엘리자베스 리터라는 여성과 연인 관계로 발전한 일이 있었다
(사진은 미아 칼리파로 대체)

물론 이 새끼는 아들이 딴따라와 놀아나는 것을 봐주지 않았다

곧바로 엘리자베스 리터는 체포되어 처녀성 검사를 받았고, 처녀임이 맞다고 밝혀졌음에도 채찍질을 한 뒤 종신형을 선고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렇다고 리터가 진짜 그냥 딴따라였던 것도 아니고 포츠담 음악대학 학장의 딸인 귀족 출신 여성이었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눈에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들놈이 새로운 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세자 프리드리히는 어느날 군사 학교 동창인 한스 폰 카테와 만남을 갖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찐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1730년 봄, 왕세자는 아버지의 폭력에 지친 나머지 남자친구와 둘이서 알콩달콩 사는 미래를 꿈꾸며 해외로 도피를 선택했다

물론 이 대형사고는 금방 들통나버렸고, 왕세자와 그 동성연인은 체포되어 베를린으로 끌려왔다

그렇게 체포된 한스 폰 카테에게는 탈영죄 명목으로 2년형이 선고되었는데...

"이 똥게이 새끼한테 2년형이라고? 너무 가벼운데?"
상남자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 똥게이를 용서하는 찐빠란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판결은 번복되었고, 사지절단형이 선고되었으나 주변에서 뜯어말린 덕에 그냥 참수형으로 감형되었다

똥게이에 대한 분노는 아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 새끼는 자기 아들도 죽여야된다고 깽판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국내외에서 이건 좀... 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궁정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국 대사들까지도 이건 아니라면서 프리드리히 1세를 뜯어말렸다

심지어는 명목상 상위 군주인 신성 로마 황제 카를 6세까지도 왕족에 대한 재판은 제국의회에서만 가능하다며 뜯어말렸다
결국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똥게이(친아들) 처단은 미수에 그치고 만다

물론 그냥 곱게 냅둘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아니었고
아들에게 동성 연인이 처형되는 장면을 강제 시청하게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부자는 표면적으로 화해하게 되었다.
왕세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도 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역시 아들이 뭔 짓을 하든 일단 내버려두며 간섭을 멈추었다
물론 왕세자는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와 사적으로는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한다

1740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아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뒤로 하고 숨을 거둔다.
이새끼는 갈 때도 참 예사롭지 않았는데

"원래 인생이란게 벌거숭이로 와서 벌거숭이로 떠나는거임"
라는 임종 예배의 설교를 듣더니

"사람이 어찌 벌거숭이로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난 제복을 입고 죽을테니 내 제복을 가져와라!"
라고 명령했고

시종이 제복을 가져왔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왕세자는 프리드리히 2세, 독일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훌륭한 군주가 되었다
이게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엄격한 훈?육 덕분인지, 아니면 본인의 재능 때문인지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나름 저승에서 아들의 치세를 보며 흐뭇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슬프게도 똥게이 치료는 되지 않아 이 새끼는 자식을 낳지 않고 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결론) 똥게이는 두들겨 팬다고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