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테토남들의 전용놀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없어서 석전이 살아남았으면 학교 운동회나 지역축제 혹은 공식스포츠가 됐을지도 모르겠음

1868
댓글 18
일본 고위 관료가 기차타고 가는데 거기에 돌 던져서 창문 깨고 명중시킴
ㅇㅇ •
와 대황본이 미개한 조선문화 철폐해준게 한두개가 아니구나 솔직히 좋은일한것도 절라 많은듯
ㅇㅇ •
이건 금지를 잘 시킨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머가리를 꺠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GL •
피구 재밌잖아 근데 피구마냥 맞았네 안맞았네 시시비비 가릴 것도 없이 진짜로 죽어버린다는거임 얼마나 개꿀잼이였을까
ㅇㅇ •
석전이 한국인의 씩씩한 기상과 전투 기술을 키운다는 점을 우려해서 엄금했다고? 국뽕을 해도 적당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진짜 정신이 나가버린거냐
ㅇㅇ •
저걸로 사회거름조차도 안되는 원종이들 대가리 뚜따해야하는데 아쉽노 ㅋㅋ
ㅇㅇ •
현대 한국은 조선과는 사실상 아무 연관이 없고 모든 법 행정 인프라 산업 문화 등 일본제국 및 현대 일본국의 영향을 근본으로 삼으며 압도적으로 받아 탄생한 나라다
ㅇㅇ •
단발령 (위생 문제 해결), 호랑이 척살 (시민 안전확보)<< 조선 시대에도 꾸준히 사냥했지만 능력이 없어서 다 못 잡음 ㅋ, 석전 금지령 (미개문화단절)난 일제가 이런 것들은 다 잘했다고 보여짐 ㅇㅇ
ㅇㅇ •
일본에는 석합전(石合戦, いしがっせん)이라는 명칭으로 조선의 석전과 비슷한 풍습이 존재했다. 이쪽도 유서 깊은 역사가 있어 《일본삼대실록》 간교 5년(881년) 기사와 가마쿠라 시대 군기소설 《겐페이 성쇠기》에서부터 언급되며, 마찬가지로 단옷날에 주로 치러졌다. 아츠타 신궁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사원에서 성행한 것으로 보아 신령과 부처를 받들어 액을 물리치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즈마카가미》에 따르면 1231년 싯켄 호조 야스토키가 석합전 금지령을 공포했으나 백성들의 반발이 심해 결국 제재를 완화했을 정도로 일찍이 그 인기가 대단했다. 이듬해 무가법(武家法)이 제정된 이래 간토 지방에서는 석합전의 빈도가 줄어들었으나, 교토에서는 여전히 석합전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ㅇㅇ •
석전문화 살아있었으면 진작에 대가리 깨져서 자연도태됐을 윤종이 ㅋㅋ
ㅇㅇ •
테토 조상들인데 왜 명나라에게 대가리 숙이고 원래 따까리였던 청나라에게 역으로 따까리되고 왜 한급 아래로보던 일본에게 지배받았나요
ㅇㅇ •
실베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직까지 링에 사람 올려두고 서로 주먹으로 치고받으며 싸우다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걸 스포츠라고 돈 내고 관람하는건 어케 생각하나 몰루겠노 wwwww
ㅇㅇ •
ㅋㅋㅋ 전쟁만 나면 '아이고' 하면서 울면서 총 거꾸로 잡고 도망가기 일쑤였다고 기록이 다 남아있는데 뭔 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 •
이래서 한국 주류 역사가 개 븅신이라는거임 ㅋㅋ다 알겟제????뭐? 석전이 기상과 전투기술연마 어쩌고 단결어쩌고 해서 두려워서 금지시켜?? ㅈ도 븅신같은 주류역사관 ㅋㅋ주류역사관이 대부분 저런식임.그래서 식민지 수탈론은 개븅신인거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진짜 역사에 가까운거임
ㅐㅐ •
조선놈들의 용기,폭력성 상한치가 고작 돌던지기 였단거임 왜놈들 카타나들고 몇백명 썰기 말갈놈들 말타고 인간과녁 맞추기 할때 돌던지기가 끝이었다고ㅋㅋ
ㅇㅇ •
진짜 일본은 파면팔수록 미담밖에 안나오냐 ㅋㅋㅋㅋ 돌들고 재미로 서로 쳐죽이던 원시부족들까지 품어주고
ㅇㅇ •
일본이 통치해주기 전까진 그냥 아프리카 토인이었다고 보면 됨 길바닥에 똥싸고 마을사람끼리 돌로 쳐죽이고 노비로 부림
ㅇㅇ •
저게 테토 풍습이라고 하는것도 웃긴게 그냥 똑같은 피지배층 서민들끼리 피터지게 대가리 깬 거지 정작 신분 높은 계층한테는 엎드려서 절하고 짓밟힘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