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mnothorax nylanderi는 중부 유럽의 온대림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작은 개미다.
2~3mm 정도로 워낙 작아서 도토리, 나무껍질, 썩은 나무의 틈새에 10~300마리 규모의 군체를 꾸린다.

그런데 이들 중 약 30%의 군체에서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이들의 둥지에는 이상한 일개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색부터 노랗고, 외골격은 부드럽다. 외양만 다른게 아니다. 이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유충의 양육이나 청소, 채집같은 그 어떤 일개미의 일도 하지않고 다른 개미에게 먹을것만 졸라댈 뿐이다.
이 기이한 일개미들은 전체 일개미 중 평균 15%, 심하면 50%를 차지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수명이 보통의 일개미들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이다.
노란 개미들의 생존율은 최대 20년까지 살수있는 여왕개미의 그것에 육박한다.
보통 일개미들은 2년도 넘기기 어려운 반면, 노란 일개미 중에는 7년을 버티는 개체도 관찰된 바 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노란 개미들은 다른 개미에게 특별취급을 받는다.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먹이, 더 세심한 청소.
심지어 여왕개미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군체에 재앙이 닥쳐온다. 큰오색딱따구리 한마리가 나무를 쪼아 군체를 열어버렸다.
일개미들은 알, 유충, 번데기 뭐가됐건 챙길수 있는것을 일단 챙겨들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친다.
하지만 노란 일개미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가만히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곧 딱따구리는 긴 혀를 틈새 안으로 집어넣고 노란 일개미들과 군체 대부분을 쓸어먹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훌쩍 날아가버린다.

며칠뒤, 숲 바닥에 떨어진 딱따구리의 똥에 다른 군체의 일개미 한마리가 다가간다.
새똥은 사실 개미에게 꽤 훌륭한 먹이다. 미처 소화되지 않은 단백질과 흔히 구하기 어려운 무기염류의 공급처가 되어준다.

횡재한 일개미는 곧장 둥지로 돌아가 다른 개미와 먹이를 교환하고, 먹이는 군체를 돌고돌다 이윽고 유충 한마리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촌충 Anomotaenia brevis의 생활사가 완성되었다.
이 촌충은 큰오색딱따구리와 작은오색딱따구리를 최종숙주로 삼는 기생충이며, Temnothorax nylanderi를 중간숙주로 삼는다.
촌충이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딱따구리의 내장 속으로 도달해야한다.
최대 70여 마리의 촌충이 개미 혈림프 내부에서 낭미충 단계에 도달하면,
이들은 온갖 종류의 단백질을 분비하며 개미의 생리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사회성 곤충의 계급은 유전자 자체의 차이보다는 유전자 발현의 차이에서 결정된다.
촌충이 분비한 단백질은 이 유전적 스위치들을 제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는 역할을 한다.

감염된 유충들은 정상 일개미에서 행동과 노동을 유도하는 신호 물질과 그 수용체의 발현이 현저히 감소하고
기생충에게 양분을 빼앗겨 근육 발달까지 저해된 상태에서 일개미로 우화한다.
하지만 촌충의 분비물에는 양육과 관련된 호르몬도 함께 섞여있다.
결과적으로 숙주들은 유충 근처에 머물면서도 군체 내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딱따구리가 둥지를 깨뜨려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게 촌충이 딱따구리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숙주의 수명이 다하기 전 딱따구리가 정확히 군체를 찾아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촌충은 항산화 단백질을 분비하는 동시에
본래 여왕개미에서 활성화되는 대사 및 항산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크게 끌어올린다.
그렇게 숙주의 세포 손상이 방지되고, 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숙주 일개미는 정상 일개미 이상의 수명을 얻게되고, 딱따구리를 기다릴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촌충의 조작대상은 일개미 하나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변태 과정에서 숙주의 외골격 탄화수소의 화학적 구성을 변형시킨다.
노란 외형이 그 결과인데, 이들은 갓 우화한 어린 일개미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숙주에게 영구히 고착시키거나, 아픈 동료라는 신호를 조작하는 듯하다.
개미 군체의 사회면역은 감염이 발생할 경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감염개체를 더 세심히 돌보아 치료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촌충은 그 체계를 해킹함으로써 숙주들이 여왕개미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도록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촌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늙지 않으며
거의 움직이지 않고 그 어떤 위험한 노동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최대한 시간을 벌며
딱따구리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노동 부담은 정상 일개미들에게 쏟아진다.
감염 군체의 정상 일개미들은 건강한 군체의 정상 일개미들보다 훨씬 사망률이 높다.
잉여 개체들을 먹이고 씻기기 위해 필요한 그 모든 추가 노동은 군체 전체에 확실한 부하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렇게 촌충은 사회성 곤충의 유전적 계급발생 체계와 사회적 시스템을 능숙히 파고들어
군체 내부에서 딱따구리에 먹히는 역할로 최적화된 사실상의 "기생충" 계급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어떤 진화적 과정을 거쳐야 여기까지 도달할수 있을까?
기생충의 경이에 오늘도 한획이 더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