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탐험대의 기록에 남은 조선 공무원..

1816년 조선 충청도 마량진에 정박한 영국 선박 알세스트호에 탑승한 영국인들이 묘사한 현지관리 조대복과 이승렬

마량진첨사 (종3품, 오늘날로 따지면 해군 대령급 전대 지휘관)조대복과 비인 현감(사또)이승렬은 알세스트 호에 승선해 필담을 시도했지만

조대복

이승렬

배에 한자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결국 손짓 발짓을 시도하며 내항 목적을 알아내려고 애썼다고 전해짐...

(그와중에 영국인들은 그걸 보고 영어로 대화 시도함)

일단 어찌저찌 상륙만은 안된다고 대화를 일단락하고 일어난 조대복과 이승렬은

그 사이에 벌써 영국 선원들과 술 먹으면서 친해진 조선 사람들을 혼내면서 돌아갔고...

그 다음 날 다시 배를 방문해서

서양 대포 쏘는 것도 구경도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선장의 초대로 식사까지 하게됐는데 이 부분이 좀 흥미로움...

비인 사또 이승렬은 나이프, 포크, 스푼을 처음 써보는 19세기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잘 사용했고

영국인들이 그를 배려해서 건낸 젓가락도 정중하게 거절하며 최대한 영국인들의 문화를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함

심지어 영국인들이 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는, 듣도 보도 못한 기합찬 행위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내 잔에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등, 영국 탐험대에게 깊은 인상을 남김

(바실 홀이 남긴 이승렬에 대한 기록)

조대복과 이승렬은 결국 조정의 지침대로 양인들의 상륙은 어떻게든 저지하는데 성공했고, 충청 수사 (제독) 이재홍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함

닷새 후 한양의 조정에도 소식이 들어갔고, 오늘날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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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손 머리 젓는데 아니라는 의미건 저시절에도 온 문화 공통이었나보네;;
메가 •
술 한잔 하고 친해졌는데 여전히 말은 안통해서 바디랭귀지로 서로 이해시키려고 열심히 소통하는거랑영국인들도 미개토인이라고 깔보는게 아니라 상대가 예의랑 격식 차리면서 자기들 대우하는거 보고 좀 배운사람인가보다 하고 인정해주는거 귀엽노
고도 •
원래 술 들어가면 친해지는 법임.... 알콜을 만국공통이니까
ㅇㅇ •
19세기 초반이라 아직 맛탱이 좀 덜 간 시점인 것도 있을 듯
ㅇㅇ •
이재명 대통령님이 솔직히 일 하나는 잘하지 않냐?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자
ㅇㅇ •
저때 일본은 쟤들이랑 직통역 다했었다는게 코미디ㅋㅋ
ㅁㄴ •
하긴 생각해보면 종3품씩이나 되는 고위직인데 과거시험도 다 통과했을거고... 이방인 존중하는거나 호기심 많은건 당연한 일이었을수도 있겠노
ㅇㅇ •
저때 수교 맺고 서양문물 받아들였으면 좃본 따잇 아님?
ㅇㅇ •
당시 조선보다 서적 출판도 활발했었다는 것도 코미디 ㅋㅋ
ㅇㅇ •
비스킷 잔뜩 안고 가려다가 걸린 사람이 웃기면서도 안쓰럽네 ㅋㅋ
ㅇㅇ •
엘도라도에선 토착민들이코쟁이보고 신이라고 간쓸개 다 내줬는데조선인은 의심하고 착륙도 안시켜주네 사스가ㅋㅋ
코이 •
저러고 50년뒤 양놈들 민간상선 불태웠다고 참교육 씨게 당하고 나라문 걸어잠금
ㅇㅇ •
비인현은 유독 외국인들이 표류 많이 하네. 이것 뿐만 아니라 일본사무라이 표류기도 있음. 일명 '조선표류일기'/ 이것도 서천군 비인현 현감이 대응했음. 기록내용은 비슷. 서로 필담하면서 표류자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풀었고 관헌의 태도나 국법 행정에 대한 묘사도 위와 거의 같았음. 격식있고 우호적이었만 국법에 따라서 차분하게 대응. 조선 복식까지 그림으로 남겼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는 소위 역사가에 의해서 단편화된 것
DF •
1816년이면 중국 일본 다 서양이랑 왕래하고 무역하면서 몇백년 지난 후 아님? ㅋㅋㅋ
ㅇㅇ •
셋중에서 가장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고도의 행정국가가 완성된 나라가 조선이라 그럼, 중국은 황도권 사람들만 잘먹고 잘살고 주변부는 오늘날 농민공과 다름없이 집도 밭도 물려받지 못해서 쿨리가 되서 사해바다로 흩어진걸 서양인들이 봐서 멸시한거고, 일본은 걍 아프라카 수준의 내전국가라 국민성이 굉장히 해적에 가깝고 저열해서 그런거임,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전혀 이상할거 없음
ㅇㅇ •
이건 ㄹㅇ 동양인 입장에서 처음보면 쌍욕나올만한데ㅋㅋㅋ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