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29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9살 이형호 군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어. 그날 밤부터 부모님한테 협박 전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범인이 요구한 건 당시엔 구하기도 힘들었던 7000만원이라는 거액과 카폰이 달린 자동차였지. 범인은 진짜 소름 돋을 정도로 치밀했어. 경찰이 붙었는지 확인하려고 일부러 형사인 척 전화해서 부모님을 떠보기도 하고 위치 추적을 피하려고 공중전화를 짧게 끊어 쓰면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거든.
중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도 있었어. 유괴 3일째에 범인이 돈가방을 가지러 나타났는데 잠복하던 경찰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눈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지. 그 뒤로 범인은 아들이 죽길 바라냐며 화를 냈고 나중에 돈가방에 신문지가 섞인 걸 확인하고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어. 결국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형호는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검사 결과 유괴됐던 바로 그날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어. 부모님은 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도 모른 채 한 달 동안 범인의 협박에 시달렸던 거야.
이 사건은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개구리 소년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 사건으로 꼽혀. 200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바람에 법적으로는 영원히 잡지 못하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지. 나중에 이춘재 사건이 해결되면서 기대를 품고 재수사도 진행됐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단서가 부족해서 아직까지 범인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어.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