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빙판 위에서 인간 오뚝이 한 명이 제대로 사고를 쳐버렸다.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우리 김길리 선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 과정을 하나씩 뜯어보면 진짜 서사가 거의 할리우드 영화급이라 소름 돋는다.
일단 준결승 때 벨기에 선수가 뒤에서 대놓고 손으로 미는 바람에 냅다 넘어져서 빙판 굴렀을 때만 해도 다 끝난 줄 알았다. 근데 김길리는 진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끝까지 레이스를 마쳤고, 결국 심판이 억울함을 인정하고 어드밴스 주면서 결승행 티켓을 따냈다. 억까를 실력과 광기 섞인 근성으로 뚫어버린 셈이다.
결승전도 진짜 쫄깃했다. 5명 중에 꼴찌로 출발해서 4바퀴 남을 때까지도 계속 뒤에 처져 있길래 솔직히 이번 판은 어렵나 싶었다. 근데 갑자기 아웃코스로 번개처럼 튀어나가더니 순식간에 2위 찍고, 3바퀴 남기고는 인코스 칼같이 파고들어서 1위까지 탈환하는 모습에 집에서 소리 지를 뻔했다.
비록 막판에 네덜란드랑 캐나다 선수들 파상공세에 재역전당해서 3위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 치열한 몸싸움과 역전극 속에서 메달 따낸 거 자체가 이미 클래스 입증이다. 이번 대회 우리나라 6번째 메달이라는데 효자 종목 쇼트트랙이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해줬다.
시상대에서 김길리가 눈물 닦는 거 보니까 마음 짠하면서도 기특해서 광대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간판인 최민정 선수는 아쉽게 결승 못 갔지만, 이렇게 막내 라인이 든든하게 버텨주니 K-쇼트트랙 미래는 여전히 밝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멘탈 잡고 끝까지 달린 김길리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