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서식하는 45세 아재가 10년 동안 주식이랑 투자에 영혼까지 탈탈 털어 넣어서 14억 원 정도를 모았어. 이 정도면 먹고살 만하다 싶어서 지옥철이랑 꼰대 상사들 면상 안 보려고 당당하게 사표 던지고 파이어족을 선언했지. 평일 낮에 여유롭게 커피 마시면서 갓생 살 생각에 싱글벙글했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매콤했나 봐.
추리닝 차림으로 평일 낮에 장 보러 나가면 이웃들이 아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일상이었어. 재택근무라고 구라라도 쳤어야 했는데 그냥 요즘 집에 좀 있다고 했더니 다들 명퇴라도 당한 줄 알고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더라고. 돈 많아서 노는 건데 설명하자니 구차하고 안 하자니 백수 취급받는 환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지.
결정타는 역시 자식이었어. 초딩 자녀가 진지하게 아빠는 왜 회사 안 가냐고, 엄마만 일해도 집구석 괜찮은 거냐고 팩폭을 날리는데 대답할 말이 없었대. 와이프조차 주변 눈치 보인다고 동네 엄마들 마주칠까 봐 집 근처 알바도 못 하게 하니까 결국 집 밖으로 탈출할 명분이 필요해진 거야.
결국 이 아재는 은퇴 1년 만에 다시 구인 사이트 기웃거리는 중이야.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단순히 월급 받는 수단이 아니라, 남들이 쓸데없는 거 안 캐묻게 만드는 가성비 끝판왕 방패막이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거지. 이제는 빡세게 일 안 하고 그냥 사회적 지위만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꿀직장을 찾는 중이래. 파이어족도 식구 딸리면 난도가 헬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사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