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먼드 회색 하늘이랑 눈싸움하다 졌어요
마감 정산하다가 영수증 뭉치를 바닥에 와르르 쏟아버렸어요. 줍기 싫어서 3초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겨우겨우 허리 숙여 주워담았네요. 리치먼드 하늘은 오늘도 회색 물감 풀어놓은 숭늉 색깔이에요. 밴쿠버 5년 차 되니까 이제 흐린 날씨는 친구 같고 비 오는 날은 지긋지긋한 가족 같아요.

날씨가 이러니까 카페 안에 있어도 물속에 잠겨있는 기분이 드네요. 손님들은 다들 어디 가셨는지 개미 한 마리 안 보이고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해요. 퇴근하고 코앞 원룸 가서 씻고 누우면 딱 좋겠는데 그 몇 걸음 걷기가 싫어서 카운터에 기대서 숨만 쉬고 있어요.

창밖 나무들은 잎 다 떨어져서 앙상한데 저만 살이 포동포동 오르는 것 같네요. 겨울 타나 봐요. 만사가 귀찮고 그냥 겨울잠 자는 곰이 부러워지는 저녁이에요. 누가 저 대신 셔터 좀 내려줬으면 좋겠네요. 집에 가면 전기장판이랑 한 몸이 되어야겠어요.
ㅋㅍㅇㅈㄷ •views101comments3like
댓글 3
전기장판이 진정한 구원자야 오늘 같은 날은 귤 까먹으면서 넷플릭스 보는 게 최고지 얼른 퇴근해
ㅂㅇ •
사장님 힘내세요 저도 오늘따라 몸이 천근만근이라 칼퇴하고 누워있습니다 날씨가 사람 잡네요
ㄹㅊ •
곰이 부러우시다니 쑥하고 마늘 드셔야겠는데요 농담이고 얼른 들어가서 푹 쉬세요 고생하셨어요
ㄱ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