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비 쉐어하우스 내 방, 스탠드 조명 아래 덩그러니 놓인 프린트물 한 장.
내일이 어학원 프레젠테이션 발표날이라 잠도 못 자고 있어. 밴쿠버 온 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났으면 입이 좀 트여야 하는 거 아니니. 근데 현실은 아직도 스크립트 외우느라 머리 쥐어뜯는 중이다.
방금 F랑 P 발음 연습한다고 입술 깨물어가며 중얼거렸어. 나름 감정 넣어서 쉐도잉 하고 있었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더라. 자다 깬 룸메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야. 거실에서 가스 새는 소리 안 나냐고.
순간 정적. 응 그거 내 발음 새는 소리야. 바람 빠지는 소리 낸 건데 가스 누출 의심받았다. 서러워서 눈물 날 뻔했어. 새해 첫날 새벽부터 이게 무슨 망신이야. 영어는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 한국 가면 엄마가 영어 늘었냐고 물어볼 텐데 그냥 묵비권 행사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