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밴쿠버 파크로열 남쪽 몰 주차장, 홀푸드 들어가는 입구 근처 기둥 옆자리였습니다. 주말 아침이라 차가 많지 않아 여유롭게 후진 주차를 시도하려던 참이었죠. 그런데 하필이면 제 뒤로 시커먼 벤츠 지바겐 한 대가 묵직하게 다가와 멈추더군요. 평소라면 눈 감고도 넣을 자리인데 뒤에서 그 거대한 차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손발이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차 엉덩이가 삐딱하게만 들어가고 라인은 도저히 안 맞더라고요. 창문을 내리고 먼저 지나가시라고 손짓을 했는데, 운전석에 앉은 백발의 할머니께서 세상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 겁니다. 그 배려가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결국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로 비상깜빡이를 켜고 그 자리를 포기한 뒤 저 멀리 텅 빈 구석으로 도망쳤습니다. 10년 차 주부 드라이버의 자존심이 주차장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아침이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