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식탁 위 펼쳐진 영어책이 나를 비웃네
아일랜드 식탁 위, 먹다 남은 식은 보리차 컵 옆. 애 재우고 육아휴직 알차게 보내겠다고 호기롭게 펼친 테솔 책이 나를 째려본다. 밴쿠버 2년 차인데 영어는 늘기는커녕 눈치랑 바디랭귀지만 만렙 찍었다.

같이 사는 친구는 방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데 나 혼자 이 새벽에 전치사 in이랑 at 구분 못해서 십 분째 멍 때리는 중이다. 학교 다닐 땐 영어가 제일 재밌었는데 지금은 흰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네. 화장실 가다 마주친 친구가 아직도 안 자냐고 묻는데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썩소 한번 날려줬다.

내일 아침에 애 깨면 다시 전쟁 시작인데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웃기기도 하고. 공부는 무슨 공부냐 그냥 넷플릭스 켜서 미드 쉐도잉 핑계 대고 드라마나 볼걸 그랬다. 머리는 굳었고 의욕은 가출했고 새벽 감성만 쓸데없이 충만하네. 내일은 그냥 유모차 끌고 도서관 가서 그림책이나보다 와야겠다.
ㅂㅋㅂㅉㄱㅁ •views116comments3like
댓글 3
육아하면서 공부까지 하려는 의지가 대단해요 저였으면 책 펴자마자 기절했을 듯
ㅈㅇ •
원래 책은 라면 받침대로 쓰는 거야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ㅍㄹ •
이민 2년 차면 0개 국어 되는 시기 아닌가요 한국어도 가물가물함
ㅇ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