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거울 보며 머리 매만지고 호기롭게 1층 밖으로 나갔어. 수업 캔슬돼서 잠깐 산책이나 하려고 나온 건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로히드 역 쪽으로 가는 지름길이랍시고 아파트 화단 가로질러 가려다가 진흙탕에 발이 쑥 빠져버렸네.
분명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잔디밭이었거든. 근데 밟자마자 발목까지 푹 꺼지는 그 찝찝하고 차가운 느낌. 5년 차 밴쿠버 고인물인데 아직도 이 동네 물먹은 잔디밭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내가 한심하다. 급하게 발 뺐는데 신발은 진흙 속에 박혀서 안 나오고 내 발만 쏙 빠짐.
회색 양말이 순식간에 진흙색으로 변하는 거 보고 있으니까 헛웃음만 나온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쟤 뭐하나 쳐다보는데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었어. 축축한 양말 신고 신발 건져내서 질질 끌고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에서 냥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라. 그냥 집에서 커피나 마실걸 괜히 분위기 잡는다고 나갔다가 빨래만 늘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