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지 호수 산책로, 세 번째 가로등 밑 벤치 끄트머리. 애들 겨우 재우고 신랑이랑 잠깐 콧바람 쐬러 나왔어.
4월 중순인데 밤 기온이 24도라니 기후변화 체감 제대로 하는 중임. 낮에 애들 놀이터에서 굴리느라 땀 한 바가지 흘렸는데 구름 잔뜩 낀 밤에 나오니까 덥지도 않고 딱 좋네.
아까 걷다가 수풀에서 바스락 소리 나길래 곰인 줄 알고 냅다 신랑 등짝 뒤로 숨었거든. 근데 오동통한 라쿤 가족이 꼬리 살랑거리며 지나가더라. 캐나다 2년차 되니까 이제 라쿤쯤은 K-아줌마의 짬바로 가볍게 무시해주는 여유가 생겼어.
처음 랜딩했을 땐 청설모만 봐도 신기해서 셔터 백 번 눌렀는데 이제는 완벽히 적응한 코퀴틀람 프로 주부 다 됐지. 흐린 날씨도 나름 운치 있고 신랑 아재 개그도 오늘따라 나쁘지 않게 들려.
이 정도면 나름 성공적인 밴쿠버 라이프인 듯해서 혼자 속으로 엄청 뿌듯해하는 중임. 집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캔맥주나 하나 따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