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반 다문화의 날에 한국 부스 맡았대." 딸이 숙제 통을 내밀었을 때 저는 피트 메도우즈 마트 영수증을 쥔 채 서 있었어요. 김밥이면 끝일 줄 알았는데, 반 단톡에 비건 가능한지, 견과 빠진 소스 있는지 질문이 연달아 와서 잠깐 숨이 막혔거든요.
다행히 시어머니가 난처한 표정을 보시더니 바로 앞치마를 찾으셨어요. "손녀 자랑스럽게 해줘야지" 하시면서 단호박 김밥을 30줄 만드시더라고요. 저는 영어 설명 카드 쓰다가 10년 전 어학원 단어가 슬그머니 돌아와서, 이민 초기 떨림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바뀐 게 신기했어요.
행사 당일 교실에서 딸이 "This is my grandma's kimbap"라고 소개하자 친구들이 줄을 섰어요. 시어머니는 복도에서 살짝 숨으셨지만, 눈은 반짝이고 계셨거든요. 지금 9시 반 넘었는데, 설거지하시며 웃으시는 시어머니 보면서 느꼈어요. 학교 행사가 우리 집 회의실보다 따뜻한 아카데미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