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 게시판 평화롭게 둘러보다가 '우파 왜 하세요?'로 시작하는 초장문 정치 에세이 하나 발견했어. 분량이 거의 졸업논문급임. 요지는 이거야. 자기는 자유를 믿고, 시장경제를 믿고, 법치를 믿고, 안보를 믿고, 가족을 믿고, 대한민국을 믿고, 책임·자조·경쟁·작은 정부·미래까지 다 믿어서 우파를 한다는 거임. (믿는다 시리즈만 열두 개 나옴)
청년들은 보조금보다 창업 기회를 원하고 평등한 가난보다 성장의 사다리를 원한다, 규제 풀고 기업 투자하게 하면 다 된다, 뭐 이런 흐름이야. 그러면서 마지막에 보험도 들어둠. 우파 정권이 실패한 적은 있지만 그건 자유·시장경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 칼을 잘못 쓴 사람 문제였다고. 칼 비유까지 등장하면서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온 힘도 자유, 앞으로 도약할 힘도 자유'로 웅장하게 마무리함.
글 자체는 솔직히 정성스러워. 근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단 말이지. 여기 밴쿠버라는 거. 캐나다 교민 게시판에서 한국 좌우파 영업하는 그림이 좀 미묘함. 게다가 '실패는 다 운영한 사람 탓, 원리는 무결' 이 논리는 사실상 무적 방패라서 뭔 말을 해도 안 깨지게 설계돼 있음. (이러면 토론이 아니라 그냥 신앙간증 아님?)
그래서 댓글창이 진짜 불바다였어. 제일 화력 센 댓글은 '역대 우파 대통령 중에 제대로 임기 마치거나 칭찬받을 사람 한 명만 대봐라, 친일파로 검색되는 사람은 제외'라면서 명단을 쫙 깔아놓고 글 쓰다가 본인이 빡쳤다고 고백한 분. 또 누구는 '좌파 우파 나누지 말고 상식/비상식으로 나누자'고 받아쳤고, 어떤 분은 '옳은 말씀이지만 그 좌우파 개념이 90년대에 멈춰있는 듯, 지금은 극우 세력 커지는 게 문제'라고 점잖게 디스함. 그 와중에 '정치 얘기는 느그 부모님 안방 가서 하라'는 분, '캐나다 살면 캐나다 정치 포럼 가서 투표하라'는 팩폭러까지 총출동했어.
결국 글쓴이가 원한 건 진지한 우파 영업이었는데, 게시판은 '밴쿠버 생활글 좀 올려달라'는 민원으로 도배됨. 정치 신념이야 자유지만 장소 선정이 좀 패착이었던 듯. 이 게시판에서 좌우파 토론 흥하길 바라는 건 비 오는 밴쿠버에서 해 뜨길 비는 거랑 비슷한 난이도 아닐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