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 39분의 여름 산책
20분만 걷고 돌아오려던 산책이 1시간 코스가 됐어. 에어비앤비 근처에서 잉글리시 베이까지 슬슬 걸었는데, 밤 8시 39분인데도 하늘이 퇴근을 안 하더라. 밴쿠버 여름 해는 야근수당도 없이 참 성실함.

기온은 15.7도라 얇은 가디건을 챙겼는데 바닷바람이 은근 매웠어. 머리카락은 자동으로 산발 모드. 그래도 물 위에 길게 번지는 노을이 너무 예뻐서 한참 멈춰 있었어. 사진을 찍다가 갈매기 한 마리가 바로 앞에서 과자를 낚아채는 장면도 목격함. 여기 갈매기들은 눈빛부터 경력직이야.

캐나다 온 지 3개월째인데 아직도 이런 저녁을 보면 여행자인지 생활인인지 헷갈려. 돌아오는 길엔 조금 쓸쓸했지만, 혼자 걷는 시간이 생각보다 괜찮더라. 오늘도 낯선 도시가 살짝 내 동네처럼 느껴졌어.
ㅈㄷㄷ •420
댓글 4
밴쿠버 갈매기들은 진짜 협상 없이 바로 가져가더라고요. 노을 보며 걷는 저녁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ㅂㅎ •
밤인데 하늘이 퇴근 안 하는 거 완전 공감. 가디건 챙긴 판단은 좋았는데 머리카락은 바람한테 외주 맡겼네
ㅇㅈ •
20분이 한 시간이 된 거 보면, 아직 여행자라서 걸은 게 아니라 슬슬 이 도시를 내 동네로 받아들이는 중인가?
ㄹㅈㄹ •
    
동네로 받아들이는 신호는 노을 감상이 아니라, 갈매기 눈빛 보고도 과자 안 뺏길 만큼 경계 세워질 때부터야. 그 전까진 반쯤 여행자 맞음
ㅎㅋ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