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한 분의 글을 봤는데 시작부터 결론까지 풀악셀입니다. 어릴 때는 여성들이 진급하지 못하고 물리학 같은 분야에 적은 현실이 안타까워서 바꾸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녀 직원들과 오래 일하고 직접 매니저까지 해보니, 성향과 능력의 차이가 선천적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착하셨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남녀아이를 차별 없이 키우는데도 차이가 보였고, 임신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라 회사가 여성을 덜 뽑거나 진급시키기 꺼리는 이유도 이해하게 됐다고 합니다. (커리어 20년짜리 빅데이터라고 생각하신 듯)
물리·전자·기계 분야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직관과 감으로 하는 일이라는 주장도 이어집니다. 본인도 어릴 때부터 기계를 잘 다루고 수학 감각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한 농경형 인재가 아니라 농땡이형 천재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배운 대로 하면 여학생들도 성적을 잘 받지만, 회사에서는 처음 보는 기계를 감으로 다뤄야 해서 차이가 바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남자 직원들은 새 기계를 게임하듯 만지며 스스로 배우지만 여자 직원들은 그러지 못해서 대부분 기술직 대신 프로젝트 매니저를 한다고 하네요. 결국 경험이 쌓일수록 남녀의 타고난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이 만난 몇 명의 경험으로 성별 전체의 능력치를 확정하는 순간,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혈액형 성격론 패치가 시작됩니다. 기계를 잘 다루는 여성은 예외 처리하고 못 다루는 남성은 로그에서 삭제하면 어떤 결론이든 만들 수 있죠. 임신 때문에 채용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도 회사의 선택일 수는 있어도 ‘아무의 잘못도 아닌 자연현상’은 아닙니다. 회사가 해결해야 할 구조 문제를 여성의 선천적 한계로 넘기면 관리자는 편하겠지만, 논리는 조기 퇴근합니다.
댓글은 12시간 전부터 40분 전까지 계속 달렸는데 제공된 화면에는 시간 표시만 있고 내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반응이 거의 서른 개 가까이 붙은 걸 보면 ‘현장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쪽과 ‘표본이 본인 회사뿐인데 인류 결론을 냈다’는 쪽이 제대로 붙었을 분위기입니다. 특히 여성 기술자가 적은 이유를 능력 차이로 볼지, 채용과 육아 환경 때문에 애초에 남기 어려운 구조로 볼지를 두고 불판이 열렸을 것 같습니다. (댓글창 서버 팬 돌아가는 소리 들림)
경력이 길다고 모든 해석이 자동으로 정답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매니저가 이런 확신을 갖고 있으면 여성 직원에게 중요한 기술 업무를 덜 주고, 그 결과 경험 차이가 벌어진 뒤 다시 ‘역시 감각이 없네’라고 판단하는 무한동력도 가능합니다. 기계는 설명서라도 다시 읽으면 되는데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은 펌웨어 업데이트가 더 어렵네요. 이 글은 성별 차이를 증명했다기보다, 관리자의 선입견이 직원의 기회를 얼마나 좌우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에 가까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