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입고 새벽에 파라솔 접은 여자
"파라솔 접어놨어?"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남편이 물었는데 내가 자신있게 응 그랬거든. 안 접어놨더라고.

새벽 세시 반에 눈이 번쩍 떠졌어. 비 많이 온다는 예보가 머릿속에서 알람처럼 울리는데 어떡해. 잠옷에 크록스만 신고 1층 가게 앞으로 내려갔지. 딸기 무늬 잠옷에 머리는 사자 갈기, 손에는 쿠션 세 개 껴안고 낑낑.

그런데 하늘은 그냥 흐리기만 하고 비는 감감무소식. 얼굴에 물방울 톡 떨어져서 아 드디어 왔구나 했는데 그거 어닝에 맺힌 이슬이었어. 안개는 로히드 몰 쪽까지 자욱하고, 16도라는데 반팔 팔뚝에 소름이 쫙. 캐나다 1년차라 여기 새벽 여름 안개가 이렇게 축축한 건지 몰랐거든.

하필 그때 길 건너 청소하시던 아저씨가 굿모닝 하면서 손 흔드시는 거야. 나는 쿠션에 얼굴 반쯤 묻고 고개만 꾸벅. 부끄러워서 커피 한 잔 드릴게요 소리도 못 했어.

지금 원두 갈면서 이 글 쓰는데 창밖은 여전히 안개만. 비 안 오면 나 저 파라솔 다시 펴러 내려가야 하나.
ㄴㅋㄴ •425
댓글 4
여기 새벽 안개 처음 겪으면 다 속아요. 저도 빨래 걷었다 널었다 세 번 했습니다. 파라솔은 그냥 접어두세요, 오후에 진짜 옵니다
ㅁㅌ •
    
이 정도로 담담하게 말하는 거 보면 님도 1년차 때 새벽에 뛰어내려간 적 있는 듯. 빨래 세 번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닌데
ㄹㄹㅋ •
    
빨래 세 번이면 베란다 출입국 심사까지 받은 거지. 이민 1년차는 사람보다 빨래가 먼저 현지 적응함
ㅂㅂㅈㅂ •
딸기 잠옷에 크록스 조합 완벽한데 뭐가 부끄러워. 청소 아저씨는 이미 동네 새벽 패션쇼 심사위원이야
ㅋ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