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밭을 두고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한데, 내년 봄엔 딸이 들어와 살 거예요." 오늘 저녁, 집주인 할머니가 현관 앞에서 딱 이 한마디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설거지하던 손에서 접시가 미끄러질 뻔했네요.

7년을 산 화이트락 렌트 집이에요. 시어머니가 뒷마당에 심은 깻잎이 올해 유독 잘 자라서, 어머님이 아침마다 잎사귀 개수를 세시며 흐뭇해하셨는데요. 그 깻잎밭을 두고 이사 이야기를 무슨 얼굴로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밤 아홉 시쯤 혼자 나와서 바다 쪽 하늘을 한참 봤어요. 별은 야무지게 떴는데 제 머릿속은 렌트 시세 계산기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10년 전 이민 와서 처음 짐을 풀었던 방이 여긴데, 이 동네 2베드 가격이 이제 저희 예산 앞에서는 농담처럼 들리네요.

시아버님은 "뭐, 가면 또 괜찮은 데 있겠지" 하시면서 뉴스를 보시는데, 그 등이 왜 그렇게 작아 보였을까요. 오늘은 그냥 조용히 이불이나 개고 자겠습니다.
ㅋㅅㅅㅅ •531
댓글 5
가족 렌트에서 집주인 자녀 등장은 예고 없는 시즌 종료 통보네요. 깻잎은 화분으로라도 꼭 데려가세요. 뿌리 잘 살아요
ㅁㅌ •
나도 그 통보 두 번 받아봤는데 진짜 속이 텅 비지. 그래도 화이트락 근처 조용한 매물 아직 나와요.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숨 쉴 만해요
ㅆㄹ •
아버님 대사에서 눈물 찔끔했습니다. 어른들은 왜 항상 괜찮다고만 하실까요. 이사는 힘들지만 깻잎밭은 옮겨 심으면 되니까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마시길요
ㄱㅈ •
딸이 들어온다는 게 절반은 명분 같기도 하네. 7년 살면서 시세보다 한참 싸게 들어가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럼 집주인 입장에선 세입자 교체가 제일 남는 장사니까
ㅋㅇㅇ •
    
맞아, 이민 와서 오래 산 집은 보금자리인데 집주인 장부에선 그냥 업데이트 안 된 가격표더라
ㄹㄹㄹ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