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봉투를 뜯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크림 튜브가 침대 밑으로 쏙 굴러 들어감. 그거 줍겠다고 엎드린 채로 오늘 하루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는데 아직도 귀가 뜨거워.
일주일 전부터 팔 안쪽이 간지러웠거든. 구글에 증상 검색했다가 세상 무서운 병 이름은 다 만나고, 결국 버나비 워크인 예약했지. 전날 밤엔 '가렵다'가 영어로 뭔지까지 찾아서 문장 만들어 외웠음. Itchy, red, about a week. 완벽했어 그때까진.
근데 막상 닥터 앞에 앉으니까 입에서 나온 말이 '여기... 아이치'. 그리고 소매를 걷었어. 결국 팔로 다 설명함. 몸으로 하는 통역이 뭔데 대체.
닥터가 몇 개 물어보더니 최근에 새로 산 세제 있냐고 하더라. ...있지. 라벤더 향에 홀려서 집어온 그거. 처방은 크림 한 통, 병명은 그냥 알레르기. 무서운 병 목록은 어디로 갔나요.
약국에서 픽업할 때 직원분이 웃으면서 금방 나을 거라고 하는데 왜 내가 다 부끄럽지. 이직 준비한다고 면접 영어는 그렇게 굴리면서 정작 팔뚝 하나를 설명 못 하네. 룸메 언니한테는 그냥 잘 다녀왔다고만 했어. 자세히 말하면 일주일은 놀림당할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