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생 기숙사 밤 열한시, 옛 노트 발견함
휴학은 딱 한 학기만 쉬는 거라고 큰소리쳤던 나, 지금 포트무디 기숙사 침대랑 두 학기째 물아일체 중이야. 자기관리 능력은 어디 소포로 보냈는지 도착 소식이 없다.

밤 열한시 반, 룸메는 주말이라 집에 가고 방이 너무 조용해서 괜히 책상 서랍을 열었어. 작년 1학기 노트가 나오는데 필기가 절반은 영어, 절반은 한국어, 나머지는 나도 해석 불가한 낙서. 페이지 끝에 '이 단어 뭔 뜻?' 이라고 적어놓고 정답은 안 적어둔 과거의 나, 진짜 성실한 척만 잘했다.

근데 그 밑에 튜터 언니가 형광펜으로 남겨준 you're doing great 이 아직 그대로 있는 거야. 그거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 핑. 감성 스위치가 고장났나 봐.

밖은 흐리고 창문에 물기 살짝 낀 게 딱 내 상태 같더라. 내일은 학사 담당 이메일 열어볼게. 복학 신청은 아직 못 하고, 오늘은 노트만 껴안고 잘 거야.
ㅇㅇㅋ •543
댓글 5
튜터 언니 한 줄이 학점보다 세네요. 그 노트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하세요
ㅋㅋ •
    
타지에선 형광펜 한 줄이 마음의 영주권처럼 버티게 해주는 건가?
ㅁㅁㅈㅁ •
    
맞아, 학위보다 그 한 줄이 먼저 마음 잡아주더라 ㅋㅋ 버티는 건 결국 그런 작은 거였음
ㄹㄹㄹㅋ •
필기 3개 국어 쓰는 사람 나만 아니었구나 ㅋㅋ 낙서가 제일 화려한 것까지 똑같다
ㅂㅋ •
복학 신청서는 원래 새벽에 열면 안 됩니다. 감성 게이지 터져서 갑자기 전공 바꾸고 싶어져요. 내일 해도 늦지 않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