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서 신발끈 묶고 있는데 이모가 장바구니를 툭 던짐. 얼굴로 받았다. 오늘의 임무는 딱 하나. 코퀴틀람 한인마트에서 멸치랑 고춧가루 사오기.
3개월째 얹혀사는 조카의 숙명이라 군말 없이 나섬. 근데 마트 들어가자마자 코가 먼저 방향을 틀더라. 입구 옆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소보로빵 냄새가 내 멱살을 잡음. 여행객이라 한 푼이 아까운 처지인데 손이 제멋대로 집게를 듦. 정신 차려보니 쟁반 위에 빵이 다섯 개 올라가 있었다.
계산하고 나와서 주차장 벤치에 앉아 한 입 베어물었는데 이게 웬일. 한국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더라. 하늘은 잔뜩 흐린데 손에 따뜻한 빵 들고 있으니까 갑자기 이 동네가 막 좋아짐. 여행 온 보람이 소보로빵에서 터질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오니 이모가 봉투부터 뒤짐. 고춧가루 어딨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남은 빵 두 개 상납하고 겨우 목숨 부지함. 내일 또 갈 예정이다. 이번엔 고춧가루부터 담고 빵으로 갈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