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산책이나 갈래?” 친구가 밤 11시쯤 갑자기 물어서 그냥 따라나갔다. 리치먼드에서 지방 출신 친구 집에 얹혀사는 휴학생한테 선택권이 어딨겠냐. 소파와 한 몸이 되기 직전이라 일단 외투부터 챙겼다.
강변 쪽을 걷다가 공공 미술 조형물을 발견했다. 둘이 작품 설명은 안 읽고 각자 제목 맞히기 시작함. 나는 ‘월세에 눌린 감자’라고 했는데 실제 주제는 도시의 성장과 연결이었다. 스케일 차이 무엇.
밤 11시 20분, 하늘은 맑고 9.2도라 손이 슬슬 시렸다. 캐나다 산 지 1년인데 아직도 얇게 입고 나오는 실수를 반복 중이다. 그래도 조형물 앞에서 사진 한 장 건졌다. 돌아오는 길엔 둘 다 말없이 걸었다. 문화생활은 했는데 내 인생은 왜 일시정지 화면인지 살짝 현타 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