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집 뒷마당, 녹슨 빨래 건조대 앞에 쪼그려 앉아 이불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있는 중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축축해. 아침에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이 정도면 마르지" 했던 네 시간 전의 나를 소환해서 조용히 혼내고 싶다.
오늘 수업이 오후 네 시에 끝나서 콧노래 부르며 들어왔는데, 코퀴틀람 하늘은 아침부터 계속 회색 뚜껑 덮어놓은 상태였거든. 비는 안 왔어. 근데 안 온 게 더 문제. 공기가 그냥 젖은 수건이야. 20도면 따뜻한 거 아니었나, 왜 이불만 혼자 물을 먹고 있냐고.
얹혀 사는 입장이라 건조기 돌리는 게 괜히 눈치 보여서 자연 바람에 맡겼던 거였는데, 그 알뜰함의 결과물이 쿰쿰한 냄새라니. 생색은커녕 증거물만 남았어.
지인은 퇴근해서 보자마자 "그래서 건조기가 있는 거야"라고 하더라. 반박할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이불 들고 세탁실로 직행했어. 오늘 밤은 담요 빌려서 자는 걸로. 밴쿠버 1년 차, 여기 흐린 날은 그냥 안 터진 비라는 걸 이제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