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 목사님 사임 설교를 조목조목 비판한 글을 봤는데 분량이 거의 신학대 기말 리포트 수준입니다. (교회 이름이랑 목사님 이름은 전부 00으로 처리돼 있음)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있었고, 그 여파로 목사님이 예정보다 0년 일찍 내려오시게 됐다고 합니다. 사임 예배 설교 본문은 마태복음 9장이었고 주제는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었습니다. 글쓴이 주장은 강단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곳이지 목회자가 서운한 걸 털어놓는 개인 공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첫 번째로 지적한 건 '불쌍히 여김'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단어가 스플랑크니조마이인데, 창자가 끊어질 만큼 아파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 설교에서 불쌍한 대상은 성도들이 아니라 목사님 본인이었다는 거죠. 마음의 상처, 우울증, 공황장애 위험까지 꺼내면서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자기 고통을 성도들 앞에서 호소하셨다고 합니다. (주제 선정이 묘하게 셀프 디스였던 셈임)
두 번째는 과거 자랑입니다. 설교 상당 부분이 예전 사역지 회상이었다고 합니다. 안수받을 때 성도들이 한복을 맞춰 입고 금까지 선물해줬다는 얘기, 개척 초기에 수백 명한테 밥 해먹였다는 얘기 같은 것들이요. 좋은 추억인 건 맞는데 불명예 사퇴 자리에서 꺼내면 "나 때는 말이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글쓴이는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는 구절까지 가져와서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는 성도들을 향한 원망입니다. 설교 중에 "교회 밖에서 그만 모이라", "SNS 글 내려줘서 고맙다" 같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 밖 모임에 SNS 폭로글까지 있었던 듯) 마지막 설교에서 이건 사실상 저격이죠. 글쓴이는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헤어질 때 누구 탓도 안 하고 "여러분을 주께 부탁한다"고만 했다는 걸 비교 대상으로 들었습니다.
네 번째 포인트가 제일 아픕니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어머니 말씀을 인용했는데, 직장 들어갈 때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 피눈물 난다"고 하셨답니다. 이 가르침대로 하나님 사람답게 살려고 애썼다고 회고하셨는데, 글쓴이는 바로 그 문장이 지금 상황에 꽂히는 부메랑이라고 짚습니다. 분란 속에서 상처받고 운 청년들과 성도들은 어쩌고, 목사님 본인 눈물만 이야기하느냐는 거죠.
다섯 번째는 예배 연출입니다. 갈등 때문에 물러나는 자리인데 외부 인사 격려사, 청년들 영상, 가족 전원 단상 등장까지 순서가 꽉 차서 거의 영광스러운 정년 은퇴식 같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엔 목사님이 '코람데오', 즉 모두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온다고 강조하셨는데, 글쓴이는 "맞는 말씀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는 업적도 억울함도 다 내려놓으시라"로 마무리했습니다. 크리티컬 히트 제대로 맞았네요.
읽다 보면 글쓴이 쪽에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님도 사람이니 힘든 거 당연하고, 공황 얘기까지 나온 거 보면 정말 지치셨던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떠나는 날 강단은 남는 사람들 마음 다독이는 자리였어야 합니다. 서운함 토로에 과거 영광 회상, 성도 저격까지 한 번에 하고 나서 은퇴식급 연출까지 얹으면, 상처받은 쪽에서는 "우리는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합니다. 퇴사하는 팀장이 송별회에서 팀원들한테 뼈 때리고 자기 업적 PPT 틀고 나가는 그림이 자꾸 떠오르네요.
이렇게 장문의 신학 리포트가 올라왔는데 댓글은 딱 하나 달렸습니다. "교회 밥 주나요?" ㅋㅋ 스플랑크니조마이니 코람데오니 키리 엘레이손이니 쏟아져 나와도 결국 관심은 밥으로 수렴하네요. (개척 초기에 수백 명 밥 해먹였다는 대목에서 꽂힌 듯) 본문 정독하신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 댓글 하나가 오히려 이 상황을 제일 정확하게 요약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성도들 입장에서는 강단에서 무슨 말이 오갔든 결국 따뜻한 밥 한 끼 같은 위로가 필요했던 거죠. 그 밥을 목사님이 아니라 남은 공동체가 서로 차려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 교회가 다음 목사님 오시고 나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은근히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