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거실 커튼을 닫으려다가 마당 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봤어. 조부모님 깨실까 봐 숨도 작게 쉬면서 창문에 얼굴을 붙였지. 새벽 세 시에 이 자세라니 매우 수상한 며느리 재질.
리치먼드 기온은 7도쯤이라 창문에 찬 기운이 돌았고, 흐린 하늘 아래 너구리 한 마리가 화단을 뒤지고 있더라. 캐나다 온 지 1년 만에 야생동물 직관이라 괜히 설렜어.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었는데 플래시가 번쩍 켜짐. 너구리랑 나랑 동시에 얼음 됐어.
그 녀석이 잠깐 나를 쳐다보는데 왠지 내가 더 민망하더라. 급하게 커튼 뒤로 숨었더니 남편이 물 마시러 나왔다가 뭐 하냐고 묻는 거야. 너구리한테 사진 퇴짜 맞았다고 했더니 웃음 참느라 어깨만 들썩임. 육아휴직 중 새벽 풍경이 이렇게 스펙터클할 줄은 몰랐네. 다음엔 플래시부터 끄고 정중히 촬영 요청해볼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