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밴쿠버 BMO 하프 마라톤(21.0975km를 달리는 육상 경기)에서 90대 부문 1위를 차지한 할아버지가 계셔. 기록은 3시간 50분 33초. 근데 재밌는 건, 꼴찌도 이 할아버지라는 거. 왜냐고? 90대 참가자가 이 할아버지 딱 한 명뿐이었거든.
원래 이 대회는 80대 부문까지만 있었는데, 권 율 할아버지가 주최 측에 90대가 80대랑 뛰는 건 불리하다며 90대 부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서 새로 생긴 거래. 진짜 추진력 찢었지.
할아버지는 60살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이게 인생의 큰 즐거움이래. UBC(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근처 실버타운에 사시는데, 동네에선 지나가면 다들 말 거는 완전 핵인싸셔. 근데 이 할아버지 인생 스토리가 한 편의 서사시야.
일제강점기 시절, 짚신을 직접 엮어 신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셨어. 게다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어머니를 잃고 피난을 가야 하는 등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극과 시련을 겪으셨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독한 끈기로 공부에 매달리셨고, 결국 캐나다 장학생으로 유학을 오게 돼. 비행기표 살 돈도 없어서 로타리클럽(국제 봉사 단체)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오셨다나 봐. 그 후로 경제학 박사 학위도 따고 호주랑 캐나다에서 교수님으로 은퇴하셨어.
지금은 달리기를 하면서 BC 암 재단(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암 연구 기금 모금 단체)에 기부도 열심히 하고 계셔. 2년 동안 모금한 돈만 2만 달러(약 2천만 원)라니 완전 멋지지. 대회 측에서 100세 이상 부문도 추가했다는데, 할아버지는 10년 뒤에 그 부문에서 뛰어보고 또 나이 제한을 늘려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시래. 진짜 폼 미친 90대 런닝맨이셔.
